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할지 왕조 (문단 편집) === [[잘랄 웃 딘 할지]] === [[노예 왕조]] 시절 델리 술탄 왕조는 [[튀르크]]계가 주류였고 할지족[* [[아프가니스탄]] 일대로 이주해 대대로 정착해 살았던 튀르크계 민족.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토착 [[파슈툰족]]과 [[통혼]]하여 피가 많이 섞였던 [[혼혈]]이었고, 때문에 노예 왕조의 주류를 이루던 튀르크계 귀족들은 할지족을 튀르크인으로 영 인정하지 않았다.]을 비롯한 타 민족들은 비주류로 차별을 받았다. 할지인들은 노예 왕조의 마지막 강력한 술탄이었던 [[기야스 웃 딘 발반]]의 비(非)튀르크계에 대한 차별 정책으로 [[델리]]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자 대부분 [[벵골]]이나 [[비하르]] 지역으로 이주했다. 한편 [[군인]]으로 복무하는 비튀르크계 출신 병사들은 [[몽골 제국]]의 침입에 대비하여 대부분 서북 지방에 배치되었다. 역시나 그곳에서도 할지족에 대한 차별은 존재했고, 할지인들은 속으로 노예 왕조와 튀르크계 귀족들에 대한 반감을 키워나갔다. 한편 술탄 발반은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귀족들의 성채를 무너뜨리고 사병들을 몰수하는 등 튀르크계 귀족들의 힘을 크게 빼놓았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튀르크계 귀족들이 비튀르크계 민족들을 억누를 수 있게 해준 무력을 없애버린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결국 술탄 발반이 1286년 사망하고 제10대 술탄으로 어리고 유약한 [[무이즈 웃 딘 카이카바드]]가 즉위하자, 할지족 출신의 [[잘랄 웃 딘 할지]]가 노예 왕조를 멸망시키고는 왕위를 차지하여 할지 왕조를 세웠다. 할지 왕조는 [[튀르크]]계 무슬림들을 중심으로 폐쇄적인 권력구조를 유지했던 이전의 노예 왕조와는 달리 [[아프가니스탄]] 계열이나 타 인도 [[무슬림]]들에게 높은 관직을 제공하는 등 보다 관용적인 정책을 내세웠다. 잘랄웃딘이 새로운 술탄으로 등극할 당시 이미 그의 나이는 70세에 달하는 굉장한 고령이었다. 인자한 노인의 인상을 가지고 있었던 잘랄웃딘은 온화한 성품과 유하고 자비로운 성격으로 유명했고, 덕분에 빠른 시간 내에 델리 시민들 다수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잘랄웃딘은 델리에 입성하고 왕궁에 들어간 이후, 자신은 왕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며 상징적인 의미로 왕좌에 앉기를 거부하는 등 여러 퍼포먼스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겸손함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일부 귀족들, 개중에서도 권력 핵심에서 밀려난 튀르크계 귀족들은 잘랄웃딘의 온화함을 유약하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옛 왕족들의 지도자이자 술탄 발반의 사촌이었던 말리크 카주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마니푸르]]에서 반란을 일으킨 말리크는 술탄을 자칭하며 델리로 진군했으나 어이없이 잘랄웃딘에게 패배했고, 이로 인해 노예 왕조의 복위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참고로 잘랄웃딘은 말리크를 처형했으나 반란에 동참한 나머지 세력들을 관대하게 처리했다. 심지어 포로로 잡힌 반란 지도부를 일부러 연회에 초대하기도 했을 정도.] 노예 왕조의 잔당들을 처리하고 확고히 델리의 술탄이 된 잘랄웃딘은 반란 진압 얼마 후인 1292년 침공한 몽골 군대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몽골의 침입을 막아낸 후에는 한창 확장주의적인 정책을 펼치며 델리 술탄국을 위협하던 란탐보르 지방의 카하마나 왕국을 침공했다. 친히 군대를 이끌고 카하마나 왕국으로 진군한 잘랄웃딘은 만다와르, 자인 요새를 차례로 격파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잘랄웃딘은 난공불락의 란탐보르 요새에 이르자, 요새 공략에 지나치게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라 예측하고 란탐보르 공략을 포기했다. 술탄의 측근들은 잘랄웃딘의 결정에 크게 반발했다. 그의 사촌이던 아흐마드는 술탄이 란탐보르를 치지 않는다면 [[힌두교]] 소왕국들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라 경고했으나, 술탄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잘랄웃딘은 그대로 회군해 돌아갔다. 당연히 이런 관용정책에 대해 불만을 품는 [[무슬림]]들도 존재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 잘랄웃딘의 조카이자 양아들이었던 [[알라 웃 딘 할지]]가 있었다.[* 잘랄웃딘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알라웃딘을 데려와 키우고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알라웃딘의 결혼생활은 [[영 좋지 않다|영 좋지 않았고]], 알라웃딘은 하루빨리 잘랄웃딘의 영향력에 벗어날 생각에 빠졌다.] 아와드의 [[총독]]이었던 알라웃딘은 잘랄웃딘의 관용정책에 반발했고, 잘랄웃딘이 카라를 방문하던 중 그를 살해한 후, 1296년 스스로 술탄의 자리에 올랐다.[* 알라웃딘은 이미 아와드 총독으로 재임할 때부터 잘랄웃딘을 살해할 생각이었다. 알라웃딘은 남쪽의 부유한 [[야다바 왕조]]의 수도인 데바기리를 침략, 막대한 양의 재물을 [[약탈]]했다. 알라웃딘의 전과에 기뻐한 잘랄웃딘은 친히 알라웃딘을 치하하기 위해 수행원 몇만 데리고 알라웃딘의 본진으로 향했다. 알라웃딘은 잘랄웃딘이 방심한 틈을 노려 그를 베고 수행원과 보좌 신하들을 모두 죽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